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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함께하는 교회 -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젊은교회 &gt; 말씀과함께(5분간증)</title>
		<link>http://togetherch.org/q/church/logos.php?mid=6</link> 
		<dc:language>ko</dc:language>
		<item>
			<title>2청년 B30샐 서병철 간증</title>
			<description><![CDATA[<FONT face=Gulim>&nbsp;<!--StartFragment--></FONT>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QT 학교 하기전</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FONT></SPAN>&nbsp;</P>
<P class=바탕글><FONT face=Gulim><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nbsp;QT학교 하기전에 저는 QT학교가 한달 과정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저는 기독교, 하나님, 교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함께하는 교회를 처음 </SPAN></FONT><FONT face=Gulim><SPAN style="FONT-FAMILY: 바탕">온 것은 2010년 12월이었습니다. 직장동료인 양근송 형제가 교회에 놀러가자고 해서 왔습니다. 그렇게 놀러가는 것도 저에게는 큰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어머님께서는 조상신을 모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를 낳으시고, 산후조리를 전혀 하지 못해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형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몸이 안좋게 되고,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지고 평생을 사시고, 신을 받들고 살아야하는 어머니의 인생이 제 마음속 한켠엔 그것이 저 때문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힘든 주물공장 일을 하시고, 그 힘들게 번돈으로 어머니 병원비에, 매년 행사같이 하는 산맞이, 굿 등을 하는데 모든 돈을 소요하셨습니다. 어쨌든 저는 어머니라는 애굽에서 31년간 살아왔습니다. </SPAN></FONT></P>
<P class=바탕글><FONT face=Gulim>&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FONT></P>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OT 학교 기간</FONT></SPAN></P>
<P class=바탕글><FONT face=Gulim>&nbsp; <o:p></o:p></FONT></P>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nbsp;2010년 12월에 처음으로 이 교회를 왔으나, 이러저리 교회에 오기가 힘들었던 저는 끊임없는 양근송의 형제의 전도와 김지언 디렉터님의 “ 병철, 너는 왜 교회 안와? ” “ 3개월만은 다녀봐 ” 라는 말과 새가족 섬김이 나래와 은혜의 나를 향한 고마운 관심 등등 때문에 1년이 넘게 걸려 새가족수료와 함께, QT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3달만 교회다녀보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에 나왔지만, 내 머릿속에는 항상 고민과 갈등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어서 빨리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QT학교를 기다렸습니다. QT학교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이었죠. QT학교 첫날, 목사님께서 아무 생각하지말고, 따라해보라고, 소리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기도회시간에 내 등뒤에서 하얀 옷을 입으신 너무나 인자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계신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너무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12시쯤에 자려고 누웠으나 밤새 온몸에 열이나서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분만은 너무 좋았습니다. 둘째날이 되었습니다. 견고한 진에 대한 부목사님의 강의였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내 속의 견고한 진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너무나 많았습니다. 모든 것이 굳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말랑말랑 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1년간 서병철과의 익숙했던 것과 이별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QT마지막 날입니다. 그날 저희 어머니께서 한달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시는 날이라 한시간정도 늦게 왔습니다. QT를 하고 본 어머니의 첫 모습은 너무나 작고, 예전보다 더 불쌍해보였습니다. 어머니는 하느님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허겁지겁 교회에 도착했고, 양을 죽이는 영상과 십자가 영상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수치와 오해와 우리 인간들이 겪을수 있는 모든 괴로움을 다 당하시고도, 그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마지막 대사 “ 이제 다 이루었도다 ” 라는 말에 왜 이 땅에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기도회때 저를 앉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목사님께서 저에게 오셔서 아주 세게 앉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저를 앉아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 품에 안겨 엄마14창과 주7창을 외쳤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일부러 더 소리내 부르짖으며 울었습니다. 오랫동안 입고 있어서 누더기가 된 제 옷을 다 벗어던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FONT></SPAN></P>
<P class=바탕글><FONT face=Gulim>&nbsp; <o:p></o:p></FONT></P>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QT학교 한 뒤</FONT></SPAN></P>
<P class=바탕글><FONT face=Gulim>&nbsp; <o:p></o:p></FONT></P>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FONT face=Gulim>&nbsp;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나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보였습니다. 첫사랑을 했던 오래전의 그녀와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떠났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제게 또 다른 첫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내 환경은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었지만, 가는 곳마다 저를 보는 사람들이 얼굴 좋아졌다며 난리입니다. 그래서 거울을 봤습니다. 항상 무표정이었던 제 얼굴이 웃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고 싶어서 토요일 양육반까지 기다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예배를 갔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금요기도회를 갔습니다. 예전에 양근송 형제를 따라 금요기도회에 처음 갔을때는 이 사람들 뭐 하는거지, 왜 저렇게 통곡하며 울고 부르짖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리내어 우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습니다. 뭔가 모르는 아픔을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어제 양육반 첫날 이었습니다. 제가 우리반의 반장이 되었습니다. 서병철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장이 됐습니다. 아주 쉬웠습니다. 그냥 손들었어요. 하나님께도 사랑 달라고 이렇게 손들면 되는 겁니까? 아직 기도하는 것이 많이 어색합니다. 그래도 소리 내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제일 사랑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받은 사랑, 나누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FONT></SPAN></P>]]></description>
			<link>http://togetherch.org/q/church/logos.php?mid=6&amp;r=view&amp;uid=7061</link>
			<dc:creator>서병철</dc:creator>
			<category><![CDATA[5분간증]]></category>
						<dc:date>2012-02-03 14:57:54</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장년 김은진 집사 간증(12.12)</title>
			<description><![CDATA[<P><FONT face=Dotum>안녕하세요. 김은진입니다. 함께하는교회 온지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FONT></P>
<P><FONT face=돋움>김기동 목사님 부임해 오시던 그 날 제가 새신자로 온 것 같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멋모르는 제가 단지 나의 아픔, 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이 교회에 왔던 제가</FONT></P>
<P><FONT face=돋움>이제는 어엿한 하나님의 딸로, 믿음의 1세대에 서있다는게 너무나도 행복합니다.</FONT></P>
<P><FONT face=돋움></FONT>&nbsp;</P>
<P><FONT face=돋움>함께하는교회를 오기 전 저의 불안과 두려움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제가 88올림픽이 열렸던 해, 10살 때 일어난 일입니다.</FONT></P>
<P><FONT face=돋움>아빠와 엄마가 돈번다는 핑계로 저는 외할머니 댁에서 외삼촌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평소처럼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고, 같이 화요일날 하는 전설의 고향을 보며 잠들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새벽에 이불이 젖어있어 이상해 눈을 떠보니 회색빛 창백한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셨지만,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고</FONT></P>
<P><FONT face=돋움>전 급하게 삼촌을 깨웠고 119차에 실려가시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너무 갑작스런 죽음이었고 또 제겐 할머니가 엄마같은 존재였기에 </FONT><FONT face=돋움>그 충격에 공항장애란 병을 얻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갑자기 심한 호흡곤란이 오면 병원을 미친 듯 뛰어갔지만 해결책은 커녕 정신차리라며 의사의 호통을 들으며 지난 시간을 보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시간이 약이라고 점점 나아가는듯 하다가도 혼자있는 밤이나 엠블런스 소리를 들으면 내 몸이 먼저 반응을 해 호흡이 자 로디지 않아 힘든 나날을 보냈었고 역시 결혼후에도 밤에 혼자 있지를 못해 신랑이 회식이나 접대라도 하는 날이면 새벽 1시든, 2시든 밤거리 온천천을 헤매고 다녔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삼십분 간격으로 전화를 해댔었고 날 이해하던 신랑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쯤 지인의 소개로 함께하는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FONT>&nbsp;</P>
<P><FONT face=돋움>함께하는교회 첫 느낌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여느 교회와는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수 있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푸른 조명, 곳곳에 놓여있는 각티슈, 성도들에게 호통도 치시는 열정적인 목사님, 뭐가 그리 삶이 힘든지 매일 우는 사람들, 각방에서 나누는 비밀 이야기들.. 중고등학교때 다녔던 교회와는 정말 달랐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암튼 이상했지만 왠지 싫진 않았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주일예배만 드리며 믿지 않는 신랑 핑계로 집에 갔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그러던 중 QT학교를 하고, 내적치유가 있다고 해서 2박 3일 참석을 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내적치유는 너무나 은혜스러웠습니다. 내적치유 그 곳에서 나의 회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할머니께서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하나님께서 할머니의 두 눈을 감겨주시고, 나를 따뜻한 품에 안아주신후로 현저히 호흡곤란 증상이 줄어들었고, 혼자있을 수도 있게 되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제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그때 임신이 되었고 우리아이에게만은 올바른 믿음의 가정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그래서 태교상 한달에 2번 교회 갈 것을 강하게 권유했고, 완강히 교회를 거부하던 신랑도 태교를 위해서라니 마지못해 두번은 따라가준다며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교회를 가기 전날엔 꼭 친구 성모씨네에 가서 낼 교회가기 싫다며, 하나님은 일요일에 쉬는데 난 언제 쉬냐며 푸념하며 술을 마셨고, 성모씨는 또 그런 우리 신랑을 위로해주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웃깁니다. 그런 우정과 의리가 있었기에 지금 하나님께서 믿음의 동역자로 붙여주셔서 재미있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FONT>&nbsp;</P>
<P><FONT face=돋움>대략 1년반쯤은 신랑을 꼬셔서 교회에 왔던 것 같습니다. 토요일날 싸우면 그것을 빌미로 교회오지 않아 토요일엔 저와 셀원들이 술상을 봐줘가며 최대한 섬겼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교회노래는 너무 사람 감성을 자극한다는 둥, 교회다니는 사람은 가식적이라는 둥 부정적인 말만 하더니 나중엔 다른 건 몰라도 다른 교회와는 다른 것 같다. 목사님 말씀하시는 것들이 실질적인 것들을 가르쳐 준다며 말씀에 인정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날 옆에 앉아 있는 신랑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죠.</FONT></P>
<P><FONT face=돋움>차츰 사람들과의 관계가 되더니, 시키지 않아도 축구부 모임에도 가고 교회 친교모임에 참석하며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궁금했던 하나님에 대한 의문점들을 하나씩 풀어나갔습니다. </FONT></P>
<P><FONT face=돋움></FONT>&nbsp;</P>
<P><FONT face=돋움>2년 흐른 어느날 마지못해 QT학교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후로 하나님을 인정하며 열심히 가이 십대의 벗 훈련도 받으며 삶 속의 예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FONT></P>
<P><FONT face=돋움>지금의 신랑의 모습을 보면 너무 감사와 행복이 넘쳐나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날 덮지 못해 세상적인 괴리감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지금,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주님 원하시는 섬김의 삶을 마땅히 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와 싸우고 있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신앙성숙의 과정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공항장애를 앓는 것 만큼 힘든 것 같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하지만 저는 이 싸움에서 분명 하나님께서 승리하리라 확신합니다.</FONT></P>
<P><FONT face=돋움>제 사랑하는 가족과 지금 함께하는 공동체가 있고 주님 주신 건강한 부부 모델이 되어 다른 가정의 회복을 돕는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FONT></P>
<P><FONT face=돋움>지난 4년을 돌아보니 받은 은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 가진 상처들 때문에 하나님을 찾은 것 뿐인데 저 혼자 나오던 교회를 애교쟁이 신랑과 입버릇처럼 하나님의 영이 나를 살리시네를 찬양하는 4살배기 딸과 식사기도만큼은 꼭 하는 2살된 아들과 함께 나오니 말입니다.</FONT></P>
<P><FONT face=돋움>5년뒤 우리 가정 모습은 더욱 기대가 됩니다.</FONT></P>
<P><FONT face=돋움>집에서도 가정 예배를 드리며, 친정 시댁 식구 모두 하나님을 믿고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원하시는 가정이 되리리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지금은 5주년 감사예배 간증자로 섰지만 5년이 지난 10주년쯤 되었을 때 이 자리가 아닌 수천명도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과 셀라이프를 찐하게 할 수 있는 셀 방들이 많은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며 공동체를 세우고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축복의 통로자로 다시한번 하나님께 영광드리고 싶습니다. 그 날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달려가겠습니다.</FONT></P>
<P><FONT face=돋움>감사합니다.</FONT></P>]]></description>
			<link>http://togetherch.org/q/church/logos.php?mid=6&amp;r=view&amp;uid=3201</link>
			<dc:creator>together</dc:creator>
			<category><![CDATA[5분간증]]></category>
						<dc:date>2010-12-14 17:03:48</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2청년 홍영희(12.10) 간증</title>
			<description><![CDATA[<!--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저는2청년에 홍영희입니다 교회온지1년8개월이 다되어갑니다. 함께하는 교회온 배경은 친구가 체육대회때 초대로 시작되었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봄.가을 체육대회참여하고 추수감사절과 열린모임을통해~함께하는 교회를 정석데로 밞아 ..맺은 영혼이 저랍니다! 교회 오기전 나의 삷은 부정과,비판,의욕상실,음주의 문화에 빠져 아주 극에 달한 삶을 살았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족들의 분열과,끊임없는 서로에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세상에 대한 원망도 커져만 갔습니다! 더욱더 비교의식이 커지며 내자신을 체찍질했고 포장하며 자존심을 내세우며 지죽지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습니다!작년 봄쯤 교회를 오고 QT학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지금도 그순간을 잊을수 없습니다!존재감이 없었던 나를 일깨워주셨고 죽음 당한신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내딸이라고..사랑한다고.나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수업이 교회를 부정하고..하나님을 욕하고..기독교인들을 욕하고 다녔던..이 죄인을 사랑한다고 해주셨습니다..내가슴이 왈칵터졌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그리고 교회온지 1년쯤 됐을때..차츰 내자신이 변화되면서 우리가족들도 하나님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엄마(아빠빼고)남동생,여동생,올케될사람까지 함께하는 교회오고..훈련도 같이 받아가며..남동생은 결혼도 하고..쌍둥이아기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아빠도 때가되면..언젠가 오시겠죠!</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작년QT때 하나님을 만나고 결심했습니다..7년을 만난남자친구 헤어짐을 선포했고 결혼도 무산/나에게 일이 가장 우선순위데.참고로 저는 파티꾸며주는 프리렌서 사업을하고 있습니다...훈련과 교회에 집중하다보니..일에 신경못쓰니..매달 적자와 빛을져가기 시작했습니다.시간과 돈을 댓가 지불하고..하나님 보고 매달리겠다고..결단했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교회와 십벗에서 하는 훈련이란 훈련은 되도록 빠지지않고 받고 지금까지 왔습니다~QT학교,양육반,제자반,사역자반,십벗3학기과정,셀에서 섬김의자리등..지금에 와서 보니..내자신이 가장많이 변화되고 성숙되고 다듬어 지고 있다는걸 너무나도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내 자신에대한 수용과 관대함이 생기니..하나님앞에 여유로움이 생기고 그래서 내가 지난날 받았던 섬김과 사랑을 감사히 여기며 나도 다시 누군가를 섬기고 사랑을 주고 리더가 되어 생명력과 복음을 주는 리더가 되어야 겠다고 그게 내 사명이이라고 다시한번더 생각됩니다.그래서 지금도 나를 세우시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누군가가 저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선택에 있어서 참 잘 택해서 온것같다고했습니다..곰곰히 생각해보니 갈등을겪고,결단을 하고,선택에 있어서 힘들고 돌아가고싶은것을들 잘 직면하여 실제적인 선택속에 뛰어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더 깊히 만날수있었던것같습니다..저도 힘들면 포기하고싶고 잠수함타고 가고싶고 주저앉고 싶을때가 없었겠습니까?</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그때 마다 나를 붙잡아준 공동체와 리더들...정말 이젠 내가 그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그리고 내 환경들은 사실 교회와서 더 어려워졌습니다.사업에 신경못쓰니..일은줄고 적자에 빛에..내 비전도 모르겠고..내 인생은 남들보다 더디고..왜 자꾸 찌질해져가냐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발버둥 발버둥 끝에 또 현실은 바닥까지 치고..내려 가다보니..비전을 발견하고 내..환경을 탓할수 만은 없다고 깨닫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결단했습니다..내 일하다 아르바이트 해야겠다고..결단하기까지..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어쩜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가운데..나의 자세와 태도를 보시겠다고 깨달아지니..아르바이트를 선택하면..물론 빛갚는데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앞으로 시간관리 하는데..물질 관리 하는데서 훈련이 되겠구나..확신이 들었습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아침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아르바이트 오후에 내 사업 저녁에 교회,십벗훈련,셀장 부셀장으로써 셀훈련 열린모임등 정말 미친듯이 3개월 정말 시간관리와 에너지 균형맞추기와 체력의 한계를 넘게 하는 것이 되어져가는 과정속에 그것들이 보여집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덩달아 비전의 길도 하나씩 열려져갑니다..아르바이트가 내인생을 찌질하게 하고있는것이 아니라..열리게 하는 문이였다는걸...내인생이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없는것이 복이고 이없는 환경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아니면 내가 과연 하나님을 의지할수 있었을까요?</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이젠 내인생을 주인되셔서..주관하시고 길을 열고,되어지게 하심이 느껴집니다!저는 파티 컨설팅 회를 만들것입니다. 이회사로 인해 나와 함께 할 공동체가 만들어지고,여기서 생명력이 흘러가고 복음이 흘러가고 풍성한 파티를 준비해 세상사람들에게 풍성함을 누리게 해주고 싶습니다..앞으로 교회에 많은 새갖족들을 위한 파티 문화와 자리도 만들것입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내일이 되면 현실은 똑같이 다가오겠죠?밀린 집세와 재료값..나가야할 돈들과,,새영혼들 섬김과 또 겪는 갈등들...하지만..이젠..그것들로 쫓겨 눈을뜨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일일들을 기대하며 그 기대감으로 눈을 뜨며 시작할것입니다!그 하니님을 깊히 있게 신뢰함주셔서 감사하고</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저는 가진것이 지금아무것도 없습니다..하지만..하나님에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큰마음과 무모함과 열정밖에 없습니다,,그믿음로 또 갈것입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이 자리에 다시한번더 서서 간증할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큰 영광 돌립니다!!</FONT></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FONT face=Dotum>감사합니다!!</FONT></SPAN></P>]]></description>
			<link>http://togetherch.org/q/church/logos.php?mid=6&amp;r=view&amp;uid=3190</link>
			<dc:creator>together</dc:creator>
			<category><![CDATA[5분간증]]></category>
						<dc:date>2010-12-13 20:07:34</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1청년 추정기(12.11) 간증문</title>
			<description><![CDATA[<P><FONT face=Dotum>안녕하십니까 A23 이세령셀 투게더 페스티발의 변박사 추정기 인사드립니다.</FONT></P>
<P><FONT face=Dotum>처음 이 간증문을 쓰게 된 날은 12월 2일 새벽이었습니다.</FONT></P>
<P><FONT face=Dotum>늦은 새벽 일을 마치고 그냥 누워 자려고 했던 저는, 하루종일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간증문 쓰기를 해보려고 맘 먹게 되었습니다. 누가 해보라는 말도 안했는데, 괜히 혼자 오바하는게 아닌지 막 웃으면서도 글을 적게 되더라구요. 한 2~3주는 있어야 간증에 서게 될 거라는 간사님의 말을 듣고, 역시나 사람은 서두르면 안돼, 기다려야지 기다려 정기야 라고 혼자 되뇌었었는데, 며칠 뒤, 저의 간절했던 간증문 낭독이 현실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고 새신자들한테도 편히 할거라 생각했던, 1청년에서가 아닌, 전교인이 함께하는 5주년 행사에서 간증을 하라는, 한 겨울에 진땀 나는 폭탄 발언을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뒤, 애써 긴장 안하는 척 했지만, 지금도 간사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도는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 서왔던 어떤 큰 무대 보다도, TV출연을 하기 위해 촬영을 하다, NG를 냈던 그 순간 보다도, 좋아하는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할때 보다도, 지금 이자리가 더 긴장되고 설레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제 인생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회에 온지 얼마 안 된것 같은데, 어느덧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버렸네요. 제 나이 25살 아직 누가봐도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이 나이 까지 오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들 그리고 쳐봤던 사고들을 다 합치면, 아마, 액션 영화 몇 편의 중요 장면을 편집해서 만들더라도, 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주위 친구들 집엔 존재 하지 않는, 비싼 피아노에, 그리고 컴퓨터에, 학원도 여러개 다니고, 그렇게 별 걱정 없이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아빠, 엄마, 누나, 나, 이렇게 4인 가족이, 오손도손 정말 행복하게 살았는데.. 초등학교때 도박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때문에, 집이 어려워지고 어머니도 힘들어지시자,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를 따라 멀쩡한 집을 두고, 입만 열어도 입김이 나오는, 달동네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초등학교때 힙합바지에 젤을 바르고 다니고, 그 모습이 선배들한테 찍혀서 중학교 올라오자 마자, 친구들이랑 끌려 다니면서 1년 중에 안 맞은 날이 더 작을 정도로 맞고 다녔습니다. 좀 맞다 보니 맺집도 생기고, 어느 정도 그쪽에선 선배들이 인정해주더라구요. 중학교 땐 아버지와 같이 아버지가 일하시는 봉사센타에서 얹혀 살았습니다. 누난 어머니랑 살게 되었구요. 항상 학교를 가는 아침이 싫었습니다.</FONT></P>
<P><FONT face=Dotum>커다랗게 적힌 봉사센타라는 곳에서 나가는 제 모습을 주위 친구들이 보면, 놀릴까봐 뒷길로 다니고, 하교 길엔 주위를 살피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멀쩡한 내 집 놔두고 남에 집에 얹혀 사는게 정말 싫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내 형편 핑계를 되면서 빗나갔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땐 힘이 없었습니다. 내가 힘이 없으니, 주위 친구들이 괄시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강한 친구 강한 선배들이 내 부족한 힘을 채워 주었고, 그 강함이 언제나 이어질 줄 알았지만, 역시나 자기 자신이 힘이 없으면, 어디 가든 괄시를 당한 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 까지도 잘나가는 친구들만 믿고 있다가, 그 잘나가는 놈들 앞에서도 짓밟히는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 어느 순간부터, 싸움이란 걸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싸움이란 거 쉽더라구요. 공부는 해도 해도 안되지만, 싸움은 하면 할수록 감이 생겨서 할만 했습니다. 술만 마시면, 우리에게 시비를 걸거나, 아님 시비를 붙여서라도, 몇 살 위든 간에 우리 선배 아니었으면 그냥 싸웠습니다. 각종 사고로 경찰서를 제 집처럼 드나들고, 봉사활동도 몇백 시간을 했는지, 세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작은 촌동네 폭주족이이라고도 뭐한 폭주족에 리더였던 적도 있었고, 그 당시 그 방면엔, 꼬맹이들 사이에선 거의 우상이 었을때도 있었습니다. 추정기가 여자를 모르면 그 여잔 거제도에 간첩 이고, 추정기를 모르면 거제도 사람이 아니다란 말이 들릴 정도로, 어느새 유명새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고등학생의 권력이란 것을 휘두르면서 정말 개차반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복학을 하며 수학여행을 두 번 갔는데, 한번은 저하나 때문에 다른 학교랑 시비가 붙어서, 패싸움이 났었고, 한번은 100여개나 넘게 모이는 학교, 수학여행지에서 우리학교가 불리게 되는 소동을 벌린 적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누나는 공부를 잘해서, 경기도 고려대병원 간호사로 취직해서 아직까지 잘 다닙니다. 엄마에게는 항상 저 하나가 애물단지 였었죠.. 그렇게 살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복무를 하던 도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남들한테 꿀리는 것이 싫어서, 로렉스 시계, 용반지, 옷은 항상 진품. 엄마가 몸도 안좋으셔서 많이 힘드신데, 그 속도 모르고 내 겉모습만 포장하기 바쁘게 살았습니다.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혼자 벌어 혼자 썼기 때문에, 솔직히 아버지가 저에겐 큰 존재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에서야, 내가 그 분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원망스러운 맘은 그대로입니다. 차라리 엄마랑 오래 오래 살다가, 아무것도 못해도 좋으니, 아들 딸이 벌어오는 돈으로 오손도손 오래오래 살다가........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군에서 전역하고 나와서는, 이제는 철이 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동네에선 할 거라곤 양아치 짓 밖에 없었습니다. 배운거라곤 삼류짓해서 남들보다 돈 많이 버는 거였고, 보고 행동하는 거라곤 아침까지 매일 술 마시는 거였고, 친구들이 맞고 오면 깽값 물려줄 돈도 없으면서, 달려가서 싸우고 오던 저였습니다. 어느 날 술이 떡이 된채로 아침에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드렸던 세상에서 제일 철 없게 말했던 말이 기억 납니다.‘엄마 나 깡패 할란다. 고마 배운 것도 없고 아버지도 안 계시고 우리 위에 행님들 돈 많이 버신다더라.‘ 내가 빨리 커서 엄마 돈 많이 줄게 라고 말입니다. 엄마가 말없이 펑펑 우셨습니다.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아픈 엄마가 맘을 많이 다치신 걸 알게되자, 깡패를 할 생각은 완전 접게 되었습니다. 전역을 하고 6개월 정도 되었을땐, 큰 소리 치면서 후배들 친구들 밥 다 사주고, 내 옷 사가면서도, 2000만원 가까이를 벌었었는데, 그것도 한 번의 큰 사고로 인해 다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사람같이 살기 위해 작은 돈을 벌게 되더라도, 만족하고 살려고 부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활 다 접고 부산에 상경해서 지금은 작은 가게에 점장을 맞고 있습니다. 양아치 같았던 삶을 살았던 때도 있었지만, 아직도 저 하나 걱정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더 열심히 살다보니, 운 좋게 여기 까지 오더라구요. 여기서 버는 돈은 사실 예전 반도 되지 않습니다. 예전엔 생각없이 돈써도 돈이 넘쳐 났는데, 지금은 가계부를 매일 적으면서 살아도, 바지에 구멍이 뚫렸나.. 계속 돈이 새어 나가는 느낌입니다. 매일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하지만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합니다. 살아있단 걸 느끼구요. 여기 이 글은 제가 살아왔던 좋지 않았던 과거에 일부, 여러분들에게 꺼내어 놓을 수 있을 만큼에 얘기들만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만큼 형편업던 제가, 그런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 갑니다. 그리고 오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지금 저의 과거 치부를 여러분들에게 불쌍하게 봐달라고, 나온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더불어, 나 옛날에 잘나갔습니다. 뭐 이런 자랑 하러 나온 것도 아닙니다. 전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의 과거지사들은 모르도록 그리고 내 잘난면만 볼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자존심이 쎈 저는, 어디 가서 제 자신을 낮춰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남들한테서 알몸 공개 하듯 바나나 껍질 벗기듯, 나 자신을 낮춰가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내가 정말 꺼내기 싫은 과거얘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고 이 자리에 내려 왔을때, 사람들의 눈초리도 두렵습니다. 간사님의 제 과거를 좀더 구체적으로 적었으면 좋겠다 란, 조언을 받아 들여 이렇게 적게 되게 되었네요. 처음 교회에 왔을때 나더러 이 자리에 서서 간증을 하라고 하면 어쩌지‘그냥 교회에 안나와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문뜻 떠오르네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말 하는 제가 자랑 스럽습니다. 이 교회를 오면서 다는 아니지만,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교회를 향하고, 그리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이, 비록 새벽기도 몇 번 와서 졸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싶고, 하나님이 절 이끄시는게, 느껴지니까요.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 많이 당하고 살아서 그런지, 사람을 잘 안믿습니다. 한 사람을 믿는 시간만해도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하물며 신을 완벽히 믿을 때 까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이 자리 서면서 그 누가 강요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절실한 신자가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태어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 갈수 있게 해주신 분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 않았다면,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믿음이란, 신앙이란, 한순간에 생겨서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생겨나서 평생 가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 다른 말은 특별히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살아 왔던 일부를 말해드린 것 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초심이란 말을 다들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목사님이 처음 이 교회를 세우고 지금 여기 까지 오기까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새신자를 초청 하고, 그 새신자들이 이젠 교회에 한 사람의 일원으로 되기까지, 처음 마음 가짐이란 것이 아마, 각자 다르게 있을줄로 압니다. 우리 교회가 큰 곳으로 이전 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교회 가서도 처음 초심을 잃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다른 셀이 되었다고 해서, 내 셀만 챙기는 그런 안하무인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과거에 붙들리지 않고 미래를 향해 뻗어 나갈수 있는 함께 하는 교인이 되었으면 합니다.</FONT></P>
<P><FONT face=Dotum>우리 교회에 2세들이 지금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똑같이 가질수 있도록 </FONT></P>
<P><FONT face=Dotum>한 사람 한 사람이 노력해주셨으면 합니다.</FONT></P>
<P><FONT face=Dotum>이상입니다.<BR></FONT></P>]]></description>
			<link>http://togetherch.org/q/church/logos.php?mid=6&amp;r=view&amp;uid=318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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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5분간증]]></category>
						<dc:date>2010-12-13 14:45:13</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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